남산예술센터
푸르른 날에를 처음 본 건 3년전이었다.
그 때도 워낙 사랑받는 작품이어서 인터넷에 추천 글이 많았는데,
막상 보고나니 극이 정신없게 느껴져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.
하지만 묘하게 기억에 남아서 그 다음해에 다시 봤는데
첫 관람때도 봤던 장면이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마구마구 쏟아져서
극 후반부에는 넘치는 아픈 마음이 감당하기 힘들정도였다.
이번엔 3번째 관람이자 3년째 연속 관람이었는데 워낙 지난 공연의 기억이 좋아서 다시 볼 계획이 없었는데
초연배우들의 마지막 공연이라 고민하던 차에 고맙게도 남산예술센터에서 기회를 줘서 볼 수있었다.
그간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매년 같은 시기 같은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이 없었던지라
마치 오랜시간 함께 한 드라마 전원일기가 끝나는 것처럼 그런 기분이 든다.
(좋은 작품이라 언제가 재공연을 할거라는 확신은 있지만 극장과 배우, 시기의 조합은 또 본다는 보장이 없으니까..)
내심 이런 상황때문에 나도 울컥하고 배우들도 울컥해서
극에 집중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(심지어 마지막 공연날도 아닌데!)
쓸데없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극은 한결같이 좋아서 그간 봤던 푸르른 날에 중 가장 냉정하게 극을 관찰하며 봤다.
이 극은 5월의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하지만,
민주주의의 당위성이나 독재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
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휘말린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하고 상처받을 수 있으며,
그 상처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본인이 깊은 아픔으로 오랜 기간 고통 받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.
민주화운동을 잘 모르거나 안타깝게 이견을 가진 이들에게는 이 주제는 이념과 사상 등의 다른 생각을 떠오르게 하지만
이 극은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런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.
실제로 작가이자 연출인 고선웅 연출님의 글을보니 자신도 잘 모르는 이야기이기에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고 한다.
기존에 잘 다룬 이야기들도 있어 기존에 봤던 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.
담담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때로는 장난처럼 느껴지게 흐르는 극은 관객에게 어떤 부담감이나 의무감을 주지않고 그저 공감하며 볼 수 있게 한다. 전체적으로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지만
고선웅연출 특유의 유머가 군데군데 포진해 있어 종종 웃음짓게 해 영화 '인생은 아름다워'가 떠오르기도 한다.
단순히 한 쪽을 피해자로만 보지도 않고, 한 개인을 영웅이나 비겁자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으로 그리며,
어제도 살고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아야하는데 그러기 위해 해야하는 것들이 있으나 그런 일들을 할 수 없게된,
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이 기나긴 시간을 이겨내며 상처는 여전히 생생하지만
그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고, 주변 사람들과 다시 보게되기까지 아픔의 시간들은 극에서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으나
그 너머의 삶이 보이는 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.
심지어 여전히 살아있는 시대의 아픔과 해결되지 않은 현실을 보며
극장을 나서는 마음이 여러모로 참 아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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